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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이씨의 엮사
 환경보호  | 2013·09·24 11:52 | HIT : 1,000 | VOTE : 41
함평이씨는 고려초에 종 3품 신무위대장군 시조 언(彦)자의 할아버지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약 1000년 역사가 된 함평이씨다. 이러한 위대한 함평이씨를 많은 국민에게 전하고저 이글을 올립니다. =함평이씨의 유래= 함평 이씨(咸平 李氏)의 유래(由來) 시조(始祖) 언(彦)자 할아버지께서는 고려초에 벼슬이 신무위대장군(神武衛大將軍)으로 종3품(從3品)에 오르시고 함풍군(咸豊君)에 봉(封)한 훌륭한 장군이십니다 그러므로 함평이씨(咸平李氏)는 함평(咸平)고을이 발상지(發祥地)이고 시조(始祖) 언(彦)자 할아버지께서는 함평(咸平)에서 득관(得貫)하셨기에 함평이씨(咸平李氏)가 된 것입니다 원래 함평(咸平)땅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 하였고 백제시대에는(660년) 굴내현(屈內縣)과 다지현(多只縣)으로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 (757년)에는 굴내현(屈內縣)이 함풍현(咸豊縣)으로 되고 다지현(多只縣)이 다기현(多岐縣)으로 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함풍현(咸豊縣)은 존속되고 다기현(多岐縣)은 모평현(牟平縣)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시대 태종9년(1409년)에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합하여 함평현(咸平縣)으로 개칭하였고 1895년에 함평현(咸平縣)을 함평군(咸平郡)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고려초기 함풍현(咸豊縣)일때는 함풍이씨(咸豊李氏)라고 불러왔었고 조선조 태종9년(1409년)에 함풍현(咸豊縣)이 함평현(咸平縣)으로 개칭되면서부터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외지에서는 함풍이씨(咸豊李氏)라고도 부르고 있으나 이는 다 함평이씨(咸平李氏)인 것입니다 (함평이씨(咸平李氏) 종중보감(宗中寶鑑)에서. 1998년) =함평이씨의 시조= 함평 이씨 (咸平李氏) 1> 시조 : 이 언[李 彦]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함풍과 모평 2현의 합명이다. 함풍현은 본래 백제의 굴내현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함풍현으로 고쳤고, 모평현은 다지현을 다기현으로 개칭하고 고려 태조때 모평현으로 하였다. 그후 1409년 함풍현과 모평현을 병합하여 함평으로 개칭되었다. 함평이씨(咸平李氏)는 고려 광종때 신호위 대장군을 지내고 함풍군에 봉해진 이언(李彦)을 시조로 한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서 언(彦)의 10대손인 종생(從生)이 세조때의 무장으로서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오르고 각 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는데 함평 이씨의 뛰어난 인물은 대부분 그의 후손이다. 문신으로는 우윤 관(瓘)의 아들로 선조때 대사간을 지낸 효원(效元), 동지 겸 성절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함릉부원군에 진봉되고 공조판서를 역임한 해, 선조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춘원(春元), 효종때 대사헌과 예조판서를 지낸 지익(之翼), 인조때 황해도 관찰사 배원(培元) 등이 명망높은 충절의 가문을 빛냈다. 무장(武將)으로는 통제사를 지낸 원(沅), 영조때 훈련대장, 병조판서, 분무공신을 역임한 삼(森),정조때 어영대장, 도총관을 지낸 창운(昌運) 등이 함평이씨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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